최한기가 평생 공부를 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주었다. 최한기의 양가와 생가는 모두 개성에 세거해온 무과집안이다. 외조 한경리는 낙론 주자학자로 김헌기등과 함께 개성에서 이름난 학자였다. 어렸을 때 최한기는 생부 최치현에게부터 교육을 받았고 후에는 외조부 한경리와 김헌기에게 교육을 받
교육과 과학연구가 연관을 맺게 된다. 연구의 노선은 대개 베이컨주의 과학이었고, 일부는 학과 설립을 위해 이론 구조를 형성하였다. 이에 따라 기술적인 측면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일정한 지식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哲學的 自然觀이 필요하게 된다. 이 시대에 인간과 자연 사이에 원래의 조화를 상
(1) 안방교육의 원리
. 안방에서 어린이는 기본적인 언어와 행동양식과 가치규범을 배우며, 가족과의 공동생활을 통해서 이웃에 대한 사랑과 신에 대한 신앙을 배운다.
(2) 일반 도야의 원리
페스탈로치는 신인본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인간교육이 직업교육에 앞서야 한다고 보았다.
경험에서 추리되어 성립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가령 잠자고 있는 동안 몸은 원래의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도 멀리 떠나 있는 꿈을 꾼다거나, 또는 죽음 직후에는 외관상 아무 변화는 없으나 살아 있을 때의 상태와는 다른 것을 느낀다. 그래서 육체와 유리되어 활동하는 원리, 즉 영혼을 상정(想定)하게
교육공학회의 이론 정립의 노력에 힘입어 보다 체제적이고 통합적인 접근방식으로서의 교수공학 및 교육공학으로 정립되었다. 이러한 학문적인 발달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시각교육(visual education)
초기 교육공학은 언어 중심의 교육방법에서 탈피하여 구체적 경험을 제공하는
최한기의 생애
최한기는 1803년 최치현과 한경리의 딸 청주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최치현의 삭녕최씨 가문과 한경리의 청주 한씨 가문은 여러 대를 개성에서 세거해 온 것으로 보아 최한기의 출생지도 개성으로 보인다. 그의 자(子)는 지로(芝A)이고, 호(號)는 젊은 시절부터 패동(浿東)과 혜강(惠岡
Ⅰ. 실학자 혜강최한기의 생애와 학문
혜강최한기는 1803년 음력 10월 26일 아버지 최치현(삭녕최씨)과 어머니 청주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최치현은 개성지역의 이름난 시인이었고, 외조부 한경리는 조유선의 제자로 개성지역에서 널리 알려진 학자였다. 양부 최광현은 무과 출신으로 곤양군수를 지
할 수 있는 理氣論의 차이에 의해 敎育전반에 걸쳐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性理學的 풍토에서 敎育은 國民의 교화와 科擧 준비에 目的을 두고 敎育機關은 유명무실화되었으며 敎育內容은 實生活과는 거리가 먼 經學과 訶章에 치중하였고 敎育方法도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이었다.